(‘10여년 전의 일이 어제처럼 생생하다’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단, 하루가 지난 일이라도 지나간 일은 이제 우리의 것도, 살아있는 것도 아니다.)
시인 김연수 산문집의 한 구절이다. 아..그래서 이렇게 산문이 산만하구나 싶다. 나는 20여년 전의 일이 스테레오 사운드 4DX 버전으로 지금 일처럼 생생한데, 살아있지 않다니. 그래서인지 모든 챕터가 다 과거의 희끗희끗하고도 쌉쌀한 회상투의 글로 가득하다.
[청춘의 문장들] 이란 제목을 뚫어지게 본다. 내 기준에서 보면 그의 과거는 찌질하기 짝이 없고, 그렇다고 현재의 그 역시도 전혀 청춘스럽지 않다. 놀 때 못놀고, 몰입할 때 몰입하지 못한, 흐느적 흐느적거리는 그의 문체가 몹시 거북하다.
청춘은 말 그대로 푸릇푸릇한 것이 마음 속에서 솟아올라 펑 하고 발하는 것일텐데, 이렇게 젊은 작가도 세상을 좁고 어둡고 작게 보면 청춘도 그리 누그러질 수 밖에는 없는 이치다.
아버지 진갑 때, 아버지가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착 뽑아들고 “청춘을~~~”하고 한 발을 탁 올려치며 “돌!!!려다오~~~” 외칠 때, “돌”에서 나는 아직도 펄펄 샘솟는 아버지의 청춘을 실감할 수 있었다. 청춘은 흥겨움이기에 나이로 재단할 수는 없는 거다. 아저씨에게도, 마을 이장님에게도, 아흔살 기타치는 할아버지에게도, 뿜어낼 수 있는 유쾌, 통쾌, 상쾌함이 있다면 그건 청춘인거다.
며칠 전에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도 ‘우와! 우리가 이렇게 나이를 먹어버렸어. 서른일곱은 내 계획에 없었는데...’ 하면서도, ‘그런데 나이를 먹었다고 특별히 바뀐 것도 없는 것 같아. 그냥 사는대로 똑같이 살고 내가 뭐 딱히 변한 것도 없으니까’ 주절주절 떠들어보니 청춘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나보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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