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썸네일형 리스트형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내가 마지막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벌써 25년 전, 아니 26년 전인가, 하여튼 그쯤의 일이다. 그때까지 나를 추동한 힘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살인의 충동, 변태성욕 따위가 아니었다. 아쉬움이었다. 더 완벽한 쾌감이 가능하리라는 희망. 희생자를 묻을 때마다 나는 되뇌곤 했다.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살인을 멈춘 것은 바로 그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_본문에서 김영하 작가 소설 중 처음으로 끝까지 다 읽은 책이다. 몇 번 그의 다른 소설을 본 적 있지만 정서와 안 맞아서인지 매번 중간에 포기하고 말았다. 사실 핑계에 불과하고 지금보다 혈기왕성할 때라 책보다는 조금 더 재미있는 걸 찾아 나섰던 것 같다. 하여튼 김영하 작가의 소설 중 끝까지 다 읽은 건 이 책이 최초다. 소설의 화자인 김.. 더보기 김영하, 오직 두 사람 그해 여름, 주말의 대형마트는 혼잡했다. 명절이 코앞이었다. 윤석과 아내 미라, 그리고 세 돌을 갓 지난 아들 성민을 태운 쇼핑 카트가 무빙워크를 타고 지하에 있는 매장을 향해 내려간다. 남은 평생 동안 반복하여 떠올리게 될 장면이지만 그때로써는 알 리가 없다. (중략) 보안요원을 따라 들어간 방에는 수십 대의 모니터가 있었다. 하지만 그 모니터들은 오직 대형마트 안의 매대들만을 비추고 있었다. 외부 임대 매장인 휴대폰 가게를 비추는 카메라는 한 대도 없었다. 아이를 찾는다는 방송이 매장 안으로 벌써 세 번째 울려퍼졌다. 반향은 없었다. 방목하는 양떼처럼, 수백 대의 카트들이 매장 안을 평화롭게 소요하고 있었다. 미라는 그들 사이로 헤치고 들어가 소리치고 싶었다. 왜 아무도 방송을 듣지 않아요? 여러분도.. 더보기 야마다 무네키, 백년법 생존제한법(Life Limit Law) 불로화 시술을 받은 국민은 시술 후 100년이 지난 시점부터 생존권을 비롯한 기본 인권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 _1부 시작에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쓴 야마다 무네키(山田宗樹)의 첫 SF 소설이다. 책을 접하기 전에는 야마다 무네키라는 작가를 전혀 알지 못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도 영화로는 알고 있었으나 원작이 소설인 건 책을 읽고 나서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게 된 건 흥미로운 설정 때문이었다. 백년법 속 세상은 더 이상 사람이 죽지 않는다. 1949년에 개발된 불로화 기술 ‘HAVI(Human Antiaging virus)’의 도움을 받으면 인간은 늙지도, 병에 걸리지도 않게 된다.죽음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난 인간. 영생이라는 오래된.. 더보기 루이스 쌔커, 구덩이 스탠리는 깨달았다. 이 모든 일은 운명이 아니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지저분하고 냄새 풀풀 나는 돼지도둑 고조할아버지 탓이었다! _본문에서 _루이스 쌔커, 구덩이 오랜만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은 거 같다. 예전에 말한 적이 있던가. 아이들이 봐서 좋은 책은 어른들이 보면 더 좋다. 이 책도 그렇다. 책은 뚱뚱하고 왕따 당하는 스탠리가 어떤 운명 같은 일에 휘말려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고, 소년원인 초록호수캠프에서 구덩이를 파는 내용을 담고 있다. 책의 이야기 절반도 스탠리가 구덩이를 파는 내용이다. 책을 꼼꼼히 뜯어보면 여러 교훈들이 담겨 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선의에 관한 거다. 선의는 남에게 도움을 베푸는 것이지만 결국 자기 자신에게 그 선의는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때문에 선의는 남이 .. 더보기 오기와라 히로시,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가게 안은 허름한 외관과는 사뭇 달랐다. 아담하고, 청결하고, 정연했다. 올록볼록 무늬가 도드라진 하얀 벽지는 막 빨아 다림질하기 전의 시트처럼 뽀얗고, 진한 갈색 바닥은 아이스링크로 사용해도 될 만큼 반짝거렸다. 라벨의 방향이 가지런하게 진열된 각종 약제는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연출가의 지시에 따라 무대 위에서 정확하게 자기 위치에 선 배우처럼 보였다. 가게 주인은 손님용 의자 옆에 마치 무슨 부속품마냥 서 있었다. 예약 시간을 확인하면서 내가 오기 전부터 줄곧 그렇게 서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자기 머리 스타일에는 별로 개의치 않는지, 그냥 짧기만 한 머리는 염색도 하지 않아 흰머리가 눈에 띄었다. 나이는 많아도 등은 꼿꼿하다. 의자에 안자마자 하얀 기운이 내 몸 전체에 씌워졌다. 타인이, 그것도 나보다.. 더보기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어떤 여행이라도 많든 적든 간에 나름대로의 중심 테마 같은 것이 있다. 시코쿠에 갔을 때는 매일 죽으라 하고 우동만 먹었으며, 니이카타에서는 대낮부터 알싸하고 감칠맛 나는 정종을 실컷 마셨다. 되도록 많은 양(羊)을 보고 싶어 훗카이도를 여행했고, 미국 횡단 여행을 할 때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팬케이크를 먹었다(일생에 단 한번이라도 팬케이크를 질리도록 실컷 먹어 보고 싶었다). 토스카나와 나파밸리에서는 인생관에 변화가 생길 만큼 엄청난 양의 맛있는 와인을 뱃속으로 밀어 넣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독일과 중국을 여행할 때는 동물원만 돌아보고 다녔다. 이번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여행의 테마는 위스키였다. (중략)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이처럼 고생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잠자코 술..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