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썸네일형 리스트형 또 한명의 쇼팽, 게자 안다. 통틀어 보건대, '쇼팽의 바이블'에 있어 마우리치오 폴리니를 능가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초기 프렐류드 전곡, 에뛰드 전곡, 피협 1번을 들어보면 알파고도 이 정도 수준의 명료하고 정확한 기교는 따라올 수 없을 경지임을 누구나 실감할 수 있다. 지금은 호호 할아버지가 되어 그 옛날의 짱짱함을 내려놓은지 오래되었지만, 적어도 마흔 이전의 폴리니는 쇼팽 연주에 꽤나 심혈을 기울였다. 그 중 전주곡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오직 작곡가가 남긴 음표만을 보고 내린 해석'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곡 그 자체의 발현임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여보게 쇼팽은 나요!' 하는 또 한 사람을 확인했다. 모차르트의 대가 게자 안다. 교보문고에 갔다가 게자 안.. 더보기 비비큐bbq 마라핫치킨과 빨간 소주면 스트레스 아웃! “(쩝쩝)음!!” “작업은 언제할거요?” “뭐 끌거 있소? 바로 해야지.” 영화 ‘범죄도시’는 수백번 봐놓고 정작 마라소스 음식은 이제서야 먹어본다. 에너자이저 아들 둔 덕분에 종일 애 뒤 꽁무니 쫓아다니다가 저녁이 되니 둘 다 방전. 배달의 민족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 “뭐 먹지?” 아내가 묻길래, “화끈한 거!” 처음엔 요즘 무지하게 광고 때리는 BHC 마라칸 치킨 했는데 재고가 없는 비보가...! 그렇게 맛있는 건가...? 그래서 두 번째 타자로 시킨 비비큐BBQ 마라핫 치킨! 쓰레기 버리고 빨간 소주 한 병 사오니 금방 딩동 소리가 울린다. 우와. 냄새부터 맵다. 매운 거에 약한 내가 과연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한 입 뜯는 순간 느꼈다. 이 놈 괜찮다. 하지만 연타석으로 대했다간 .. 더보기 쇼팽 스페셜리스트, 타마슈 바샤리의 철학 “베토벤을 못치면 쇼팽도 못친다” 20세기 최고의 쇼팽 스페셜리스트 타마슈 바샤리의 말에 공감한다. ‘모차르트 없이 베토벤도 없다’는 내 평소의 생각과 일직선상에 놓여있는 듯 하다. 실제로 모차르트의 [6개의 독일무곡] 만 자세히 들어봐도, 베토벤의 피아노곡 중 상당부분이 모차르트의 화성법에서 진보되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바샤리는 전체 구도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되면 무엇이든 대입시킬 수 있다는 것을 라흐마니노프 피협 연주로 증명했다. 협주곡 3번 카덴차 ossia 부분을 들었을 때, ‘최고의 낭만주의자’는 ‘최후의 낭만주의자’이기도 하구나 싶었다. 타건과 터치 모두 섬세하면서도 매우 도발적인, 흔한 말로 곡을 엿가락처럼 가지고 노는 수준이다 ‘피아노의 귀신’ 프란츠 리스트에 이어 졸탄 코다이와 벨.. 더보기 랑랑의 차이코프스키 ‘둠카’ 새벽에 종종 차이코프스키의 둠카를 듣곤 한다. 랑랑의 서정적인 멜로디를 듣고 있자면 왠지 모르게 이스탄불의 밤하늘이 떠오른다. 한번도 가보진 않았지만 마치 가본 것 같은 묘한 환상을 준다. 터번을 두른 덥수룩한 수염의 할아버지 한분이 보인다. 모닥불 옆에 낙타 한 마리가 매어 있다. 따듯한 담요 하나 두르고 불쏘시개로 이리저리 뒤적이고 있으면 스르르 깊은 잠에 든다. 위안의 곡, 위로의 곡이다. 더보기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청춘이라 부르기엔 기운빠지는 이야기들. (‘10여년 전의 일이 어제처럼 생생하다’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단, 하루가 지난 일이라도 지나간 일은 이제 우리의 것도, 살아있는 것도 아니다.) 시인 김연수 산문집의 한 구절이다. 아..그래서 이렇게 산문이 산만하구나 싶다. 나는 20여년 전의 일이 스테레오 사운드 4DX 버전으로 지금 일처럼 생생한데, 살아있지 않다니. 그래서인지 모든 챕터가 다 과거의 희끗희끗하고도 쌉쌀한 회상투의 글로 가득하다. [청춘의 문장들] 이란 제목을 뚫어지게 본다. 내 기준에서 보면 그의 과거는 찌질하기 짝이 없고, 그렇다고 현재의 그 역시도 전혀 청춘스럽지 않다. 놀 때 못놀고, 몰입할 때 몰입하지 못한, 흐느적 흐느적거리는 그의 문체가 몹시 거북하다. 청춘은 말 그대로 푸릇푸릇한 것이 마음 속에서 솟아올라 펑 하.. 더보기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집/발터 기제킹 “나비는 왜 계속 수집하는 거에요?” 부인이 묻자 발터 기제킹은 짧게 대답했다. “손가락이 아주 예민해지니까.” 그는 손가락 뿐만 아니라 발가락도 예민했다. 피아노의 페더링을 반의 반 정도 살살살 밟아가며 현과 마주치는 묘한 지점에서 악보를 훑어내는 천부적인 재주가 있었다. 그가 ‘페더링의 화가’라는 별칭을 갖은 이유이다. 악보 그 자체를 드러내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 어떠한 해석의 여지도, 일말의 MSG도 없는 깔끔한 연주. 그 바탕에 곤충학자였던 아버지가 있다. 어렸을 적부터 그는 아버지를 따라 자연에 나가 함께 곤충을 채집했는데, 특히 나비에 관심이 많았다. 수집을 넘어 본인이 나비의 종을 두 개나 발굴했을 정도다. 이 정도면 가업을 이어받았다고 얘기할 수 있겠다. 살금살금 까치발로 다가가 살포.. 더보기 ‘82년생 김지영’, 통계자료로 쌓아올린 대참사의 글 분노유발자. 나는 이런 작가들을 그렇게 부른다. 혼자 화내고 혼자 끝낸다. 어설픈 학자들이 소설을 쓰면 이 꼴이 난다는 걸 훤히 보여준 좋은 사례이다. 읽는 내내 글 밑에 붙는 각주부터 뭔가 불편했다. 뭔 소설을 쓰는데 '나 논문 좀 써본 사람이다' 자랑하고 앉아있다. "자꾸만 김지영 씨가 진짜 어딘가 살고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작가의 말이다. 사회학과 출신인 본인이 모은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글을 썼다. 본인이 겪지 않은 내용을 묶어쓰다보니 자기 감정에 싸여 편집증적인 이야기만 풀어냈다. 작가 의도대로라면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인물은 사는 평생 온갖 차별과 무시, 냉대만 겪고 살다가 결국 미쳐서 신이 내린다. 나는 묻고 싶다. 82년 실제 살고 있는 대한민국 김지영이 과연.. 더보기 김선욱 피아노 리사이틀. 나 대신 울어준 공연이었다. 나 대신 울어준 리사이틀이었다. 마지막 앵콜곡 브람스의 인터메조는 너무 슬퍼서 공연장을 빠져 나오는 내내 한숨을 쉬었다. 김선욱은 서른에 접어드는 지금부터가 애매한 시기라고 했다. 20대의 신동도, 그렇다고 중년의 거장이라 불리기에도 다소 어정쩡한 시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불확실성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꾸준히 연구할 수 밖에 없고, 여기에서 필요한 건 과연 어디에 초점을 두고 메세지를 던질 것인가하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번 리사이틀의 주제는 우리 세대의 슬픔이었다고 생각한다. '2~3년 후의 나는 무엇이 될지 예측할 수 없다'고 한 그의 말대로, 혼란 속에서 밀려오는 고뇌와 좌절, 그것에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버티고 분노하고 격정하는 고단한 일상의 수행을 한 음 한.. 더보기 [태교 음악 - 말러 피아노 사중주] 간밤에 쌓아둔 책 더미를 밀어내고 아내가 커피 한잔 내준다. 오늘의 커피는 에디오피아 모모라 내추럴. "감사합니다" 하고 옆으로 몸을 뉘어 조르륵 커피를 따라 한 모금 퍼뜨린다. '커피 배트맨'이 제공하는 원두는 시중의 것과 비할 바가 아니다. 그윽한 향미가 금새 온 방을 감싼다. 아내는 아침부터 양갱을 만든다며 급하게 부엌으로 갔다. 말러 피아노 사중주를 틀어놨구나. 어제 본 셔터 아일랜드에서 반복적으로 흘러나온 곡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어둘 것은 영화는 영화고, 음악은 음악이라는 점이다. 영화가 음울하다 하여 음악까지 도매급으로 팔아버려서는 안된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가 어우러져 반복적인 패턴을 유지하며 나아간다. 말러는 생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 실내.. 더보기 러시아 혁명만큼 강력한 프로코피예프의 ‘음악 혁명’ 1918년 5월, 프로코피예프는 러시아 혁명으로부터 탈출하여 미국으로 향한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뉴욕에서의 데뷔 연주회는 참담한 실패로 끝난다. 현지 비평가들은 그의 음악을 깊이 없는 싸구려 잔술 정도로 취급하기 일쑤였다. 심지어 어떤 이는 "쇤베르크를 하나, 그리고 사티를 약간, 다시 슈만을 한 방울, 그리고 얼마쯤의 스크리아빈과 스트라빈스키를 부어보라. 그러면 당신은 프로코피예프의 음악과 상당히 닮은 것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라고까지 폄하했다. 당시 매우 보수적이었던 미국으로서는 그의 음악이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납득할 수도 없는 너무나 변칙적인 음악세계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오늘날 프로코피예프는 현대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보인 러시아 음악계의 선각자로 통하고 있다. 그의 피아.. 더보기 이전 1 2 3 4 ···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