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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북끄끄

김영하, 오직 두 사람


그해 여름, 주말의 대형마트는 혼잡했다. 명절이 코앞이었다. 윤석과 아내 미라, 그리고 세 돌을 갓 지난 아들 성민을 태운 쇼핑 카트가 무빙워크를 타고 지하에 있는 매장을 향해 내려간다. 남은 평생 동안 반복하여 떠올리게 될 장면이지만 그때로써는 알 리가 없다.


(중략)


보안요원을 따라 들어간 방에는 수십 대의 모니터가 있었다. 하지만 그 모니터들은 오직 대형마트 안의 매대들만을 비추고 있었다. 외부 임대 매장인 휴대폰 가게를 비추는 카메라는 한 대도 없었다. 아이를 찾는다는 방송이 매장 안으로 벌써 세 번째 울려퍼졌다. 반향은 없었다. 방목하는 양떼처럼, 수백 대의 카트들이 매장 안을 평화롭게 소요하고 있었다. 미라는 그들 사이로 헤치고 들어가 소리치고 싶었다. 왜 아무도 방송을 듣지 않아요? 여러분도 아이가 있잖아요?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안 그래요?

그때도 윤석은 자기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말 잠깐이었다. 누군가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가 카트 손잡이에서 손을 떼자마자 조용히 카트를 끌고 어디론가 가버린 것이다.


(중략)


그들은 마트와 경찰서를 오가며 그날 하루를 보냈다. 저녁이 되자 그들은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피어나는 불길한 예감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영원히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_본문 '아이를 찾습니다'에서



최근 출간된 김영하 작가의 단편소설집이다. 이 책 역시 김영하라는 이름 하나로 읽은 책이다. 어렸을 때 그의 책은 딱딱했고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이를 먹을수록 김영하라는 작가가 만들어낸 세상에 점차 매료됐다. 그만의 독특한 시선과 발상은 화려하지 않지만 정곡을 찌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 책은 <오직 두 사람>, <아이를 찾습니다>, <인생의 원점>, <옥수수와 나>, <슈트>, <최은지와 박인수>, <신의 장난> 이렇게 총 7편의 단편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아이를 찾습니다>다.


평범했던 가정을 꾸미고 있던 윤석과 그의 아내 미라는 어느 날 아들 성민을 데리고 대형마트를 찾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들인 성민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 충격으로 미라는 반쯤 실성하게 된다.

윤석은 직장까지 그만두고 성민을 찾아 나서지만 결국 찾지 못한다. 그렇게 십일 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고 윤석 앞으로 한통의 전화가 온다. 아들인 성민을 찾았다는.

며칠 뒤 성민을 만난 윤석. 반갑게 맞이해보지만 너무나 커버린 아들의 모습이 윤석은 어색하기만 하다. 그건 성민도 마찬가지였다.


소설은 제목과 달리 잃어버렸던 아이를 찾았을 때 마주할 수 있는 문제에 맥락을 두고 있다.

아이를 찾으면 마냥 기쁠 것 같았지만 막상 아들의 존재가 눈앞에 나타나자 윤석 부부는 큰 혼란에 빠진다. 윤석은 자신만큼이나 커버린 아들이 낯설기만 하다. 성민은 십일 년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존재가 자신의 생모, 생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윤석은 성민만 찾는다면 다시 행복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이미 무너진 가족관계를 회복하기에 그들은 너무 오랜 시간을 타인으로 살아왔다. 시간은 모든 걸 파괴한다. 십일 년이라는 시간은 혈연관계마저도 파괴하기 충분한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디서 들은 바로는 소설가는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도 재밌게 쓸 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 이 책이 그렇다. 단순한 소재들로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시종일관 흡입력이 있다. 감동이나 교훈은 없다. 오로지 김영하라는 소설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재밌을 뿐이다.


왜 김영하를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소설가라 하는지 알 것 같다.



북끄끄 | 김영하, 오직 두 사람

written by mulgogiz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