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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남아있는 것들

성냥, 레이저 빔보다 강한 불빛

 

“불 좀 붙딥시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첫 대사이다. 성냥개비 하나를 꺼내어 종이갑 붉은 옆줄에 착 붙여밀면 ‘훅’ 하고 불이 솟는다.

치이익.....스....읍.

굳게 다문 입술, 담배와 심지와 불이 만나 지글지글 타오르는 소리. 입으로 꿀떡 연기를 삼키고 나면 서서히 휘발 냄새가 피어오르며 자글자글한 불길이 담뱃속을 타고 오른다.

‘띵’ 소리를 내며 쏙 하고 파란불이 고개를 내미는 금색 라이터가 흡연의 판을 뒤집어도, 여전히 가스불보다는 유황불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구수한 불맛이 당긴단다.

‘성냥애연가’들은 밥 먹고 식당 나오는 카운터에 성냥갑이라도 보일 참이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사장님. 성냥 좀 가져갈게요” 하며 게눈 감추듯 세네개를 주머니에 꾹 찔러넣는다. 나가기 무섭게 ‘츄악’ 날카로운 불을 훨훨훨 일으켜세워 한 손으로 바람막을 친다. 조심스레 불과 입을 맞추고는 검게 그을린 성냥개비를 두어번 흔들어 끄고 나서는 입안에 머금은 연기를 후아하고 날려보낸다.

“초는 큰 거 작은 거 몇 개 드릴까요?”

케잌 박스에 담긴 초 옆에는 항상 기다란 성냥이 붙어있다. 생일 축하에 앞서, 제일 먼저 전기불을 끈다. 온통 암흑 속에서 성냥개비에 불을 그어 초에서 초로, 그 다음 초로 이어 붙인다. 박수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나면 주인공은 후우 하고 불빛을 날려보내는 것으로 또 한번 태어난다.

백만년 전 인류와 지금의 인류의 지능 차이는 별반 다르지 않다는 여러 연구결과를 본 적이 있다. 어두운 동굴 속, 이번 한 해도 살아남았음을 감사하며 쏘시개로 모닥불의 불씨를 키워가며 두 손을 쬐던 그 누군가의 기억이 초에서 초로, 그 다음 초로 이어져 지금 우리의 가슴 속을 따스하게 감싸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간편한 모든 불을 놔두고 기꺼이 성냥개비를 집어들어 옛불을 되살려내어 신성한 의식을 치루고자 함은 전기가 만들어 낸 복잡다단한 세상 속에서, 오직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각별한 영역으로 둘려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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