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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오래 전 우리에겐 워크맨이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1996년. 문화계의 전설과도 같았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가 있었던 해. 나는 초등학교도 아닌 국민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엄마는 졸업 선물을 사줄 테니 갖고 싶을 걸 말해보라 했다. 난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워크맨이요!” 워크맨. 일본 SONY에서 개발한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로 우리 삶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해 준 획기적인 제품이자 음악 감상을 취미를 넘어 일상생활로 바꿔놓은 물건. 나는 그런 워크맨이 갖고 싶었다. 워크맨이 개발된 건 1979년이다. 당시 기술 팀장이었던 쿠로키 야스오(黑木靖夫)는 연구소의 젊은 직원들이 작은 카세트테이프 레코더를 재생 전용으로 개조해 음악을 즐기는 모습을 보고 재생 전용 기기를 개발하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 더보기
이어폰과 감상의 소멸 ​ 이어폰의 목적은 '혼자듣기'다. 수많은 군중 속에서도 자기만이 이 노래를 독식하는 것, 독식하여 나만의 형식으로 감성에 담아두는 것, 짧은 찰나 속에서도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것, 여전히 고독하다는 생동을 일깨우는 도구이다. 그러나 이어폰이 '일상화'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아침밥을 먹듯 귀에 이어폰을 꽂고 출근길을 나선다. 카톡, 페북, 스케쥴 확인 등 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귀는 혼자가 아님을 감지한다. 하루의 펼쳐질 불안감이 뇌를 파고들면, 청각의 몰입은 불균형 상태에 빠져 음악은 들렸다 말았다 한다. 이내 주변의 잡담소리가 이어폰을 뚫고 들어온다. 보는 것인지, 듣는 것인지, 생각하는 것인지 잘 알 수 없는 어중간한 상태에서 이어폰은 계속.. 더보기
성냥, 레이저 빔보다 강한 불빛 “불 좀 붙딥시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첫 대사이다. 성냥개비 하나를 꺼내어 종이갑 붉은 옆줄에 착 붙여밀면 ‘훅’ 하고 불이 솟는다. 치이익.....스....읍. 굳게 다문 입술, 담배와 심지와 불이 만나 지글지글 타오르는 소리. 입으로 꿀떡 연기를 삼키고 나면 서서히 휘발 냄새가 피어오르며 자글자글한 불길이 담뱃속을 타고 오른다. ‘띵’ 소리를 내며 쏙 하고 파란불이 고개를 내미는 금색 라이터가 흡연의 판을 뒤집어도, 여전히 가스불보다는 유황불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구수한 불맛이 당긴단다. ‘성냥애연가’들은 밥 먹고 식당 나오는 카운터에 성냥갑이라도 보일 참이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사장님. 성냥 좀 가져갈게요” 하며 게눈 감추듯 세네개를 주머니에 꾹 찔러넣는다. 나가기 무섭게 ‘츄악’ 날.. 더보기
나는 국민학교를 졸업했다. 요즘 아이들에게 “국민학생이니?”라고 물어보면 “네?”하는 반문이 돌아온다. 생전 처음 듣는 단어라 그럴 테지만 어쩐지 아이들의 반문에 옛날 사람이 된 기분이다. 나는 국민학교를 다녔다. 지금은 모두들 초등학교를 다니지만 내가 초등교육을 받을 시기엔 초등학교는 없었다.국민학교가 처음 생긴 건 1941년이다. 일제는 일왕 히로히토의 칙령으로 ‘황국신민을 길러내는 곳’이라는 의미로 소학교를 ‘국민학교’로 바꿨다. 1945년 해방 이후 일본은 군국주의 청산을 위해 국민학교를 폐기하고 소학교로 명칭을 바꿨지만 정작 우리는 국민학교로 계속 사용하다 1996년이 돼서야 민족정기회복차원에서 초등학교로 변경했다. 지역마다 약간의 시간적 차이는 있겠지만 어쨌든 난 초등학교를 다닌 적은 없다. 처음에는 초등학교라는 말이 .. 더보기
그땐 그랬지 그 시절 우리가 열광했던 것들 | 그땐 그랬지written by mulgogizari 더보기
비운의 작곡가 마상원과 은하철도999 작곡가 마상원. 자세히는 몰라도 어디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일 것이다. 작곡가 이전 그는 70년대 ‘마상원과 그 악단’이라는 밴드를 이끌었던 음악가다. MBC의 인기 프로그램인 ‘명랑운동회’나 ‘가요청백전’에서 멋진 음악으로 예능에 활력을 더 했던 밴드가 바로 ‘마상원과 그 악단’이다.나는 사실 방금 언급한 예능 프로를 한 번도 본 적 없다.(당시엔 내가 너무 어렸다) 그래서 밴드가 연주하는 음악도 들어 본 적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마상원이라는 이름 석 자를 또렷이 기억하는 건 그가 작곡한 수많은 만화 주제가 덕분이다. 악단을 운영하던 그가 어떻게 만화 주제가를 작곡하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만화를 방영해야 했던 방송사는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 주제가가 필요했고, 이 작업을 마상원에게 .. 더보기
통키 아빠는 피구하다 죽지 않았다. 내가 본 만화가 한 두 개가 아니겠지만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인 피구왕 통키를 잠시 소개하려 한다. 피구왕 통키가 기억에 많이 남는 건 그저 만화만 본 것이 아니라 직접 피구를 하며 놀았기 때문이다.나는 만화를 보기 전까지 피구, 즉 닷지볼(Dodgeball)이라는 운동이 있는지 몰랐다. 만화를 보면서도 피구가 실제 한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작가가 만든 가상의 운동인 줄로만 알았다.피구는 1895년 YMCA 체육부장인 월리엄 모건(William Morgan)이 만든 구기운동으로 양 팀이 일정한 구역 안에서 상대를 공으로 맞춰 마지막까지 남는 팀이 승리하는 경기다. 만화를 본 사람이나 나와 비슷한 또래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운동이다. 이 피구라는 운동에 만화적 상상력이 더해져 만들어진 게 바로 피.. 더보기
TV 만화의 숨겨진 비밀 내가 어릴 적 TV에서 본 만화를 잠시 늘어놓자면 이렇다. 쥐라기 월드컵, 축구왕 슛돌이, 베르사유의 장미, 피구왕 통키, 전설의 용사 라무, 번개 전사 슈퍼 그랑죠, 몬타나 존스, 시간탐험대, 미래 용사 볼트론, 은하철도 999, 메칸더 V, 꾸러기 수비대, 로봇 수사대 K캅스, 아벨 탐험대. 이밖에도 더 굵직굵직한 만화들이 있지만 내가 기억하는 건 이 정도다. 인기가 좋았던 이 만화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일본 만화라는 것. 이제와 만화의 국적이 무슨 상관있겠냐마는 당시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히 한국인인 줄 알았던 통키가 일본인일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피구왕 통키의 원제는 ‘불꽃의 투구아 도지 단페이(炎の闘球児 ドッジ弾平)’로 ‘폭주 형제 렛츠&고(국내에서는 1998년 .. 더보기
만화와 애니메이션 나는 애니메이션이 아닌 만화를 보며 자란 세대다. 당시는 케이블 방송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만화를 보려면 학교를 마치자마자 바로 집에 와야 했다.어릴 때 만화는 내게 유일한 문화였다. 물론 볼거리가 없던 건 아니다. 영화도 있고 책도 있으며 게임도 있었다. 다만, 돈이 안 드는 건 만화뿐이었다. 하루 용돈이 삼백 원이던 내게 선택권은 없었다. 중학생이 돼서도 만화를 봤다. 기억나는 만화를 잠시 이야기하자면 ‘K캅스 로봇 수사대’, ‘몬타나 존스’,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정도다. 제목은 또렷이 기억하지만 이 만화들이 어떻게 끝나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만화를 보는 시간이 줄었기 때문이다. 중학생쯤 되니 야간 자율학습도 했고, 친구들과 놀기도 해야 됐다. 그렇게 한두 번 빠트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