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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남아있는 것들

이어폰과 감상의 소멸



이어폰의 목적은 '혼자듣기'다. 수많은 군중 속에서도 자기만이 이 노래를 독식하는 것, 독식하여 나만의 형식으로 감성에 담아두는 것, 짧은 찰나 속에서도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것, 여전히 고독하다는 생동을 일깨우는 도구이다.

그러나 이어폰이 '일상화'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아침밥을 먹듯 귀에 이어폰을 꽂고 출근길을 나선다. 카톡, 페북, 스케쥴 확인 등 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귀는 혼자가 아님을 감지한다. 하루의 펼쳐질 불안감이 뇌를 파고들면, 청각의 몰입은 불균형 상태에 빠져 음악은 들렸다 말았다 한다. 이내 주변의 잡담소리가 이어폰을 뚫고 들어온다.

보는 것인지, 듣는 것인지, 생각하는 것인지 잘 알 수 없는 어중간한 상태에서 이어폰은 계속해서 울린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울리지 않는다. 음악은 흘러나오지만 의식은 이미 익명의 늪으로 빠졌기 때문이다.

이어폰은 늘 귀에 꽂혀있고, 고막은 울리지만, 나는 그 자리에 없다.

감상의 소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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