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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같지 않은 소설

줄야근 틈새를 달리다. [대전집] ​ 야근을 마친 후 곧장 집으로 와 나이키 깔맞춤으로 갈아입고 문을 박차고 나왔다. 지금 뛰어야 살 수 있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아파트 단지를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다. 줄넘기를 돌리는 시간마저 포기한지 어엿 반년이 지나가는 시점이다. 보통 1500개는 거뜬히 해내는 관절이지만 지금은 그리 했다간 온 뼈마디가 작살이 날 것 같아 일단 러닝으로 운동의 가닥을 다시 잡아보기로 마음 먹었다. 이 아파트 단지를 돌아본 적이 없으니 우선 오늘은 다섯 바퀴를 뛸 다짐으로 무거운 몸뚱아리를 이끌었다. 입사 후 2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 나는 10키로가 쪘다. 숨이 막힐 듯히 차오르는 가스배는 이제 점차 살로 굳어져 그러려니 하는 뚱보의 길로 접어들어 가고 있다. 서른 중반의 나이에 그럴 수 있다고 .. 더보기
태양건조하기 좋은 날의 아침카페 [대전집] ​ 돌이켜보면 가장 건강했던 시절은 군복무 때였다. 태양건조. 모포(이불)을 거의 빨래해 본 기억이 없다. 오로지 날 좋을 때 밖에 널어두는 것 외에는 달리 무슨 소독이라든지 다른 조치를 해본 적이 없다. 한나절 두고 걷어와 또 잠자리에 펴두고 그렇게 지냈어도 누구하나 호흡기 질환에 걸리지 않았다. 가장 열악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자연을 이용하는 것이다. 제일 안전한데다가 가장 효율적이기까지 하다. 제습기도 물청소 후에 볕 좋은 날 베란다에 두면 아주 뽀득뽀득 깔끔하게 말라 있다. 검댕자국이 잘 지워지지 않거나 해도 별 문제없다. 가장 쾌적하다. 양치, 세면 도구도 빨래건조대 옆에 두었다. 동네 카페에 나와 선풍기와 초여름 공기를 쐰다. 아무 책이나 읽는다. 건강한 휴식의 하루. 더보기
나주 도래마을의 별밤 ​ 한참 올림픽 삼매경인데 아내는 창밖만 본다. 유성우를 기다리는 것인데, 못참고서는 마당에 나가 돗자리를 펴 놓고 아예 누워버렸다. 달 지고 삼십분 지나서인가, 뭔가 지나갔다고 외치는 마디에 덩달아 마음이 동해서 '별똥별 그거 뭔지 한번 보자'하고 나갔다. 물반 별반이다. 초점을 놓고 멍하니 있으려니 정말로 꼬리 문 빛깔들이 쌕쌕 지나간다. '오!'하고 외치는 순간에 쏙 잠겨버린다. 큰 놈 작은 놈해서 여섯개를 보고나니 이내 잠잠해진다. 몰려드는 모기 통에 더는 못 있을 것 같아 1분만 더 보고 들어가자하고 막 일어서려는데, 갑자기 북서편에서 남동편으로 큰 놈 하나가 칼처럼 일어서서는 우직하고 판을 갈라놓는다. 다른 별 어디에선가 지구별을 한 가운데 놓고 쌕쌕 지나가.. 더보기
아버지의 ‘지방쓰는 법’ ​ [서울집] 명절이면 내가 하는 것이라고는 지방쓰는 것 뿐이다. 그 외 밤을 까거나 청소설거지하는 정도가 추가적인 '임무'다. 일단 지방 쓰러 방으로 들어가면, 굳이 묻지도 찾지도 않는다. 사대봉사니 공식적으로는 총 여덟분의 신위를 쓰면 된다. 종손의 타이틀로 많은 업무에서 열외의 '특혜'를 누려왔다. 매번 아버지에게 지방으로 잔소리를 듣는다. 올해는 '글씨를 너무 굵게 쓴다'는 점을 지적받았다. 한 때는 힘있게 쓰라고 해서 나름 성을 들인 것인데 약간의 어리둥절함도 있다. 뭐 그렇다고 하니 다음엔 그렇게 써야지 하고 만다. 이 많은 분들 중에 내가 본 유일한 분은 할머니 밖에 없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지방이 갖는 어떤 경건함이라든지 그런 것에 대.. 더보기
현아의 ‘원룸’은 집이다. ​ 입사 후 첫 거처는 탄방동 원룸이었다. 나중에 관사로 옮기기까지 대략 8개월 정도 그곳에 살았다. 방음상태가 매우 불량했다. 내 좌우 룸 모두 누가 살고 있는지, 싸우는지 티비를 보는지 사랑을 하는지, 아주 세세한 것들까지도 생생히 들렸다. 특히 내 오른쪽 룸은 거의 난장판에 가까웠다. 한 커플이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날이면 날마다 다투다가도, 어느 순간 보면 화해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 그럴 땐, 남자가 문을 쾅 닫고 어디론가 나가버린다. 화장실로 독한 연기가 퐁퐁퐁 잠입한다. 문을 꼭 닫아두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 작은 쪽방에 툭하면 대여섯명쯤 되는 친구들이 몰려와서는 술 마시고 소리지르며 밤새 뛰어노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격무로 곯아떨어지지 않았다면 아마 그냥 두지 않았을 것 .. 더보기
자존감과 자존심의 차이. ​ 종종 흥미로운 해석을 목격하게 된다.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모든 원인과 결과를 나로부터 찾아 남탓을 안하고, 자존심이 높은 사람은 원인과 결과를 남에게서 찾는다고 한다" '자존감'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한 건 극히 최근의 일로 알고 있다. 흔히 자존심이 담고 있는 부정적 표현과 구별하고자 쓰기 시작한 모양인데, 한자 그대로 풀어보면, 차이의 포인트는 부정 또는 긍정이 아닌 지속성과 일시성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존심 : 나를 존중하는 마음 자존감 : 나를 존중하는 느낌 내지는 감각 '심'은 마음이고 굳어진 바탕이다. '감'은 순간이며 상황에 따라 발생하는 그때그때 마다의 느낌이다. 말 그대로 따지면 자존심이야말로 순간순간의 희노애락에 여의치 않.. 더보기
노동의 신성성 ​ 사실 노동의 분량이라는 것은 데드라인이라든지 사명감 따위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순수히 내가 가진 체력에 비례한다. 가령, 내가 가진 역량의 70%이상의 기운으로 하루 10시간을 일했을 시, 피곤함을 느낀다면 설사 일을 마치지 못했어도 가능한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을 멈추어야 한다. 생명에게 노동은 평생의 업이다. 본래 끝이라는 것이 없다. 굳이 끝을 따지자면 죽음이다. 따라서 하루 노동의 끝을 맺는것은 나 자신이며, 그 척도는 내가 견딜 수 있는 체력과 역량에 달려있다. 노동의 데드라인을 세워 가용한 에너지 이상의 과부하 상태를 지속시킬 경우 노동은 응당 '하는 것'에서 '해야만 하는 것'으로 별다른 목적을 찾을 수 없는 반복적 강박의 의식단계에 접어든다. 즉.. 더보기
‘대의명분’이라는 도구 ​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주로 사용하는 것이 '대의명분'이라는 도구이다. 사실 싸우기 위해 명분을 세우는 것이지, 명분을 위해 싸우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래서 양쪽이 '도레미파솔라시도 중에 어느 하나만 걸려봐라' 하고 있다가 상대가 파라도 치는 날에는 솔을 쳐야지 왜 파냐고 미친듯이 파고든다. 그들에겐 그게 도든 레든 미든 관계없다. 그냥 상대가 뭐라도 누르는 게 싫은 거다. 이것은 일종의 제로게임이다. 서로가 놓은 '분노의 덫'에 스스로 말려들어가 상대가 없어질 때까지 죽이는 것. 정작 근본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 상대의 상흔과 시신을 제물로 바쳐 싸움의 정당을 확보하는 것. 불타는 논밭 위에서 춤추고 좋아하는 것. 대의명분의 진정성을 보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그에 관한 일에 대해 일관적으로 실.. 더보기
싱싱한 아침 샐러드, 브람스의 발라드 ​ 아침 출근 라디오에 흘러나오는 피아노 곡이 너무 좋아 찾아보니 브람스의 발라드였다. 미켈란젤리의 도이치 그라모폰 마지막 녹음 앨범. 이제는 절판되어 시중에서는 찾기 어렵고다만 음원의 일부만 멜론에 열려 있더라. 대전 예당에 갔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음반 가게에 들어가 물어보니 사장이 씨디 한장 들어보이며 "좋은 앨범이죠. 오래됐어요. 주인 만나가네요" 하며 피식 웃는다. 미켈란젤리의 타건은 가볍게 드레싱을 얹은 싱싱한 샐러드다. 간장조차 치지 않은 생순두부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귀한 앨범을 만나 정말 감사하다. 더보기
페이스북의 비인간성을 지적하는 ‘비인간성’ ​ 페이스북의 '비인간성'을 지적하는 글들이 종종 올라오곤 한다. 그에 관한 책도 이 사람 저 사람 쓰는 것 같다. 페북의 비인간성을 논하는 가장 큰 맹점은 애초에 페북이 그 비인간성이라 말하는 '위장술'을 전제하는 프로그램이고, 사용자는 그 '위장술'을 충분히 인지하고 자기 입맛에 따라 사용한다는 사실을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맥도날드에 가는 사람에게 맥도날드가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이라는 사실을 상기해주는 것과 같은 것인데, 세상에 어떤 사람이 기호식품을 먹으면서 '아 이런젠장 내가 이런 함정에 빠진 사실을 몰랐다니'하고 놀라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럼 페북에 추석 때 집안싸움을 찍어올린다는지, 내가 누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