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집]
명절이면 내가 하는 것이라고는 지방쓰는 것 뿐이다. 그 외 밤을 까거나 청소설거지하는 정도가 추가적인 '임무'다. 일단 지방 쓰러 방으로 들어가면, 굳이 묻지도 찾지도 않는다. 사대봉사니 공식적으로는 총 여덟분의 신위를 쓰면 된다. 종손의 타이틀로 많은 업무에서 열외의 '특혜'를 누려왔다.
매번 아버지에게 지방으로 잔소리를 듣는다. 올해는 '글씨를 너무 굵게 쓴다'는 점을 지적받았다. 한 때는 힘있게 쓰라고 해서 나름 성을 들인 것인데 약간의 어리둥절함도 있다. 뭐 그렇다고 하니 다음엔 그렇게 써야지 하고 만다.
이 많은 분들 중에 내가 본 유일한 분은 할머니 밖에 없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지방이 갖는 어떤 경건함이라든지 그런 것에 대해서는 딱히 느껴지는 바는 없다. 그 보다 내게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지적에 대한 보강이다. 열세살에 물려받았으니 20년 동안 그렇게 매진해 왔다.
'그림 그리지 말고 글씨를 쓰라'는게 제일 오랫동안 간 것 같다. 글씨를 쓰는 게 뭘까하면서 보낸 시간이 족히 10년은 넘은 것 같다. 그 외에도 천천히 써라, 칸 맞춰라 등 셀 수 없이 많지만 굳이 나열할 필요는 없겠다.
이런 것들이 내게 짜증이나 귀찮은 것이라면 진작에 그만두었을 것이다. 그래도 뭔가 특별한 것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산 자 간의 담담한 소통이다. 잡담과는 차원이 다른 일종의 응축된 암호와도 같다.
나는 지방을 쓰는 마지막 세대일지 모른다. 내가 죽을 때까지는 적어도 지방만큼은 계속 쓰여질 것이다. 아버지와 나의 연결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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