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감소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막지 못할 것이다. 어떠한 인구 부양책을 쓰더라도 두 가지 근본적인 문제로 인해 효과를 볼 수 없을 것이다.
불과 1세기 전만 해도, 인류의 평균 수명은 40세를 넘지 못했다. 인간은 질병, 전쟁 등에 의한 이 짧은 인생의 마감으로 인해 자신이 채 이루지 못한 '자신의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번식 활동을 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내 아들, 그리고 손자, 심지어 증손자까지 이어지는 1세기 이상의 증가된 삶의 시간이 인류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더 이상 또다른 나를 만들어야 할 당위성을 잃어버리게 된, 다시 말해 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품게 된 것이다. 의학의 발전은 거꾸로 종족번식을 부정하게 된다.
자식이 나를 대신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비혼률이 폭증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값이다.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 더욱 뚜렷해지며 타인과 나의 구별짓기는 더욱더 나노화되어 간다.
로봇의 급속한 진화는 인류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하나둘씩 제거해 나아가고 있다. 인공지능은 수많은 인간의 직업을 앗아갈 것이다. 노동의 신성성은 파괴되고, 그것은 인간의 존재 자체가 과연 의미있는 것인지 스스로 묻게 되는 과정으로 옮아간다. 좀비에 대한 사회의 갈구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구는 이미 모두 정복되었다. 남은 단 하나의 방법은 우주산업이 앞으로 얼마나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가에 달렸다. 인류의 정복욕과 번식욕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행성을 발견하지 못하면 공상영화는 조만간 현실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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