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시절, 빛을 필요로 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약 한달의 겨울방학 동안, 햇빛을 제외한 어떤 전기불도 사용하지 않았다. 외출도 하지 않았다. 그 때 난 어둠에 익숙해졌다. 불을 켜지 않고 손더듬으로만 위치와 사물을 판단했다. 어둠 속에서 가만히 동공을 확장하면, 사물이 어느 정도 식별이 가능해졌다. 눈도 훈련에 따라 단련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달빛으로 책을 읽었다는 선조들의 이야기는 사실일 것이다. 달이 너무 밝아서가 아니라 어둠에서도 식별이 가능한 시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은 귀했고, 어둠은 빛보다 익숙했을 것이다.
불을 발견하기 이전, 인류의 시력은 적어도 5.0이 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의 고양이처럼, 밤에는 눈을 반짝이며 적의 움직임을 주시했을지도 모른다.
수천년간 전해져 오는 터키의 전통적인 새소리 대화도 적에게 들키지 않고 어둠에 대처하는 방법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들은 새소리로 위장하여 상대의 위치와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한다. 접촉이 어느 정도 가까워지면 멀리서도 자신의 동료를 뚜렷이 알아본다.
음력이 강했던 시절, 지금 우리가 보는 달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비쳐지지 않았을까도 생각해본다. 달빛에 비친 세상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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