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같지 않은 소설 썸네일형 리스트형 69년 혹성탈출과 어르신 어르신. 사전에는 늙은 노인을 높여 부르는 말이라고 나온다. 그런데 왜 신일까? 특정 마을에는 지금도 한 해의 시작에 앞서 산신의 '승인'을 받기 위해 여러 방식의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미많은 곳에서 옛 형식이 깨져 구색맞추기 식으로 치르는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꽤 많이 남아 있다. 그런 마을에는 실질적으로 어르신은 단 한 명 뿐이다. 이장이 부르는 게 아니라 "어르신이 모이라 하니 몇 시까지 회관으로 오세요"하는 식이다. 마을의 과거일과 성장 역사를 모두 꿰고 있는 자. 주민으로부터 공인된 촌로이다. 이 사람만이 마을의 신과 접촉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진배대기를 하면, 진대를 베는 사람은 청년일지라도 진대를 부여 잡고 신이 내려오기를 기원하는 것은 어르신이다. 신을.. 더보기 82년생 익선동-운현초교, 재동초교, 교동초교 영뽀와 나는 1982년 같은 해, 익선동 중앙병원(지금의 떡 박물관)에서 태어났다. 우리는 태어났을 때부터 친구였다. 엄마끼리 둘도 없는 친구였던 까닭이다. 운현유치원에 같이 들어가 운현초등학교에서 같이 수학했고, 이어 청운중학교, 경복고등학교를 함께 나왔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우리는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 입학했다. 영뽀는 우리 인생에 있어 익선동에서 살았다는 것이 너무나 큰 축복이었다고 말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이곳에서 쌓은 친구들과의 교분이 훗날 거대한 ‘종로 친구 집단’을 형성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익선동의 핵심은 통학권의 중심 지점이라는 데 있다. 익선동과 천도교당 사이에 난 큰길을 두고 위에서부터 재동초교, 운현 초교, 교동초교가 일직선으로 위치하고 있다는 점은 이곳에.. 더보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 짜증 아침부터 마음이 편치 않다. 출근하기 전 엄마와 한바탕 했기 때문이다. 사실 엄마에 대한 일방적인 짜증이었다. 엄마는 퇴직 후 다 큰 아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셨다.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아들내미에 대한 우려와 걱정일 것이다. 그런 걱정과 관심이 고맙기는 하지만 이미 머리가 큰 아들은 그런 관심이 한편으로 부담스럽기만 했다. "왜 이렇게 늦게 자니.", "살 좀 빼라.", "양치질은 했니?", "옷 좀 얌전하게 입고 다녀라." 자식을 위한 잔소리라는 걸 안다. 그래서 아들도 묵묵히 "네."라고 대답하며 넘겼지만 오늘 아침은 참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출근하기 전 짜증 한 바가지를 쏟아내며 엄마의 작은 부탁도 무시해 버렸다. “알았어. 그만하자.” “그게 아니라...” 힘 없이 하는 엄마의 말에도 아들은 짜.. 더보기 스승의 날, 최고의 선물은 당신의 결과물이다. 대학원 수업 때, 레쥼 발표가 끝나자 교수님은 잠시 자료를 만지작만지작하시다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셨다. “지금 너희들이 중요한게 뭔지 모르고 있어. 공부라는 것도 일종의 취향인거야. 옷을 입어보고 나서 아 이 옷은 내 몸에 안맞네라든지, 뭐냐면 내 스타일이 아니네라든지 이러면 안 입으면 되는거야. 그런데 지금 입어 보지도 않고 계속 매장에서 옷자락만 만지작대고 있는 꼴이야. 겉에서 맴돈다고. 두 발 자전거 처음 탈 때 많이 넘어지지? 근데 한번 익히면 매일 타고 다니지? 똑같은 거야. 뭐냐면 넘어지고 일어나서 또 타고 익숙해져서 나중에 힘 크게 안들이고도 계속 굴러가는거라고. 자전거는 탈 수 있을 때가 되면 마음에 드는 걸로 얼마든지 갈아 타고 되는거니까 일단은 공부를 제대로 하는게 중요해. 나도 많.. 더보기 무균무때의 시대, 살균제의 출현 세균이라면 요구르트 유산균 말고는 병을 옮기는 벌레 그 이상도 아닌 것으로 인식하게 된 것. 모조리 박멸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치명상을 안겨주게 될 것이라는 그 불안한 믿음감으로 인해 탄생한 것이 살균제이다. 메르스 사태를 지켜보며 두려웠던 것은 메르스 자체보다, 만에 하나라도 감염될지 모르는 그 병균체를 잡기 위해 전국 곳곳에 비치된 살균제였다. 99.9%의 세균을 박멸할 수 있는 약품이라면 이건 농약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 아닌가. 흐르는 물에 비누로 간단히 씻어 해결할 일을 되려 그르치는 것은 아닌가.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매일 접하는 수십억 종의 박테리아와의 공생 관계의 단절이 오게 되는 것은 아닌가. 다양한 항체를 보유하고 있는 생체 내 면역체계는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게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더보기 세 개의 문방구집 익선동에는 세 개의 문방구가 있었다. 첫째 문방구, 둘째 문방구, 셋째 문방구. 문방구 이름은 있었지만 우리에겐 아무 의미도 없었고 그저 학교에서 가까운 순으로 그렇게 불렀다. 세 문방구는 교동 초교와 낙원상가 길 사이에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그 땐 재동/교동 국민학교에 한 학년에 열 몇개 반이 있었고 반마다 애들이 50명씩 있을 때라(운현초교는 제외 : 전교생 180명) 세 곳의 문방구가 그럭저럭 먹고 살만했던 것 같다. 각 문방구는 규모도 달랐고 생존방식도 달랐다. 첫째 문방구가 제일 작았다. 비교적 젊은 아주머니가 운영했는데 학생들에게 참 친절했고, 무엇보다 학교 숙제에 필요한 기초 교구들이 대부분 다 있었다. 그래서 탐구생활이니 과학실험이니 뭐니 하는 것들에서 필요한 물건들은 죄다 그 집.. 더보기 아빠의 청춘이 담긴 곳, 광화문거리 아빠에게 출판사에 대해 물으면, 아빠는 아무 이야기도 해주지 않는다. 단지 “나중에...시간이 많이 지나면 말해줄게.” 이 한 마디 뿐이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30-40대 아빠의 삶은 내가 보고 느낀 것, 또는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아빠는 책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아빠는 예전 다니시던 출판사에서 매번 ‘이 달의 독서왕’에 뽑혔다고 했다. 출판사 도서관의 거의 모든 책을 다 빌려 봤다고 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볼 수 있는 책들은 모조리 읽고 또 읽어 외워버렸다. 특히 예술 분야에서 서예와 동양화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아직도 서울집에 옛 도록들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당시 아빠의 열정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내가 태어나기 전, 아빠는 회사를 나와 당.. 더보기 익선동 골목길을 누비던 아저씨들 엄마는 내가 아주아주 어렸을 적부터 ‘인사하기’를 무지하게 시켰다. 그래서 어디를 가던 ‘이 분은 누구시란다 안녕하세요 해야지’ 하면 나는 구십도로 “안녕하세요!”를 크게 외쳤다. 그래서 항상 동네에서 인사를 가장 잘 하는 아이로 통했다. 우리 집 골목 앞에는 서울우유 영업소가 있었다. 할아버지 내외분이 운영하셨는데 나를 유독 예뻐해주셨다. 할아버지는 항상 “어이구 우리 손주 왔구나! 꼬추 얼마나 컸나 보자!” 하시면서 품에 안고 둥가둥가 놀이를 해주셨다. 나는 ‘서울우유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이른 아침이면 두부를 파는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았다. 그러면 나는 엄마가 준 돈을 들고 나가 ‘안녕하세요 두부 하나 주세요’ 하면 아저씨가 검은 비닐 봉지에 담아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더보기 이응노 그림과 엄마의 꽃사랑 엄마는 꽃을 사랑한다. 그래서 취미도 화초 가꾸기다. 지금도 서울집을 가면 엄마는 화분 가득한 곳 어딘가를 가르키며 여기에 이렇게 예쁜 꽃이 피었다고 가서 향기 좀 맡아보라고 신나서 자랑을 한다. 고3 봄날 어느 때였던가. 어느날 엄마가 "청와대 앞에는 무슨 꽃이 폈니?" 물었는데 나는 아무렇지 않게 "모르지" 했다. 다시 엄마가 '너는 5년 넘게 이 길을 다녔는데 꽃이 뭐가 있는지도 모르냐' 핀잔을 주니 그때서야 아차!하는 뭔가가 가슴에 뭉클하고 들어왔다. 이응노 작가의 '꽃'을 지그시 보고 있으니 '언제나 명랑소녀' 엄마가 생각난다. 올 추석에 올라갈 땐 화분을 사가든지, 아니면 꽃을 그려서 선물로 드려야겠다. 더보기 헤어드레서의 격 [대전집] 나는 대전 이정수 미용실만 다닌다. 정확히 말하면, 이정수씨에게만 커트 예약한다. 한번은 바빠서 '요술가위'라는 동네 미용실 갔다가 흑마술을 부려놔서 그만 감자머리가 되어 버린 이후 더더욱 이정수씨를 신뢰하게 되었다. 미용사는 세 부류가 있다. 머리를 잔디로 보는 자, 나뭇잎으로 보는 자, 산으로 보는 자 이렇게 있다. 이 중 산으로 관찰하는 자가 가장 우수하다. 이정수씨도 그 중 한 명이다. 미용사만 탓할 일도 아니다. 내 머리도 상당히 곤란하다. 나도 여기저기 다니면서 알았다. 옆머리는 곱슬, 윗머리는 생, 앞머리는 제멋대로, 뒤통수에는 제비꼬리다. 한마디로 지랄병 맞은 머리다. 감식안을 가진 미용사도 알면서 건드리지 못한다. 그럴 땐 함께 한 숨을 쉬며 "할 수 있는.. 더보기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