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1996년. 문화계의 전설과도 같았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가 있었던 해. 나는 초등학교도 아닌 국민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엄마는 졸업 선물을 사줄 테니 갖고 싶을 걸 말해보라 했다. 난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워크맨이요!”
워크맨. 일본 SONY에서 개발한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로 우리 삶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해 준 획기적인 제품이자 음악 감상을 취미를 넘어 일상생활로 바꿔놓은 물건. 나는 그런 워크맨이 갖고 싶었다.
워크맨이 개발된 건 1979년이다. 당시 기술 팀장이었던 쿠로키 야스오(黑木靖夫)는 연구소의 젊은 직원들이 작은 카세트테이프 레코더를 재생 전용으로 개조해 음악을 즐기는 모습을 보고 재생 전용 기기를 개발하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최초의 워크맨인 ‘TPS-L2’이다.
그러나 초기 반응은 냉담했다. 헤드폰이 없으면 음악을 들을 수도 없고, 녹음 기능도 없는 멍청한 기계라며 소니 내부에서조차 실패작으로 불렸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전혀 달랐다.
좋은 음질과 편리한 휴대성은 대중을 압도하기 충분했고, TPS-L2는 출시 2개월 만에 초기 생산 물량인 3만 대를 모두 매진시키며 우리 삶을 바꿔놓게 된다.
TPS-L2 성공으로 도시바, 파나소닉 등 많은 기업에서도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국내 기업들도 비슷한 제품인 마이마이, 아하프리, 요요 등을 양산하기에 이르며 본격적으로 걸으며 음악을 듣는 워크맨의 시대가 열린다.
엄마는 내 바람대로 ‘Walkman’이라는 브랜드명이 크게 박힌 멋진 제품을 사주셨다. 워크맨이 생긴 후로 단순했던 내 일상에도 음악이 깔리기 시작했다. 평범했던 등굣길도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음악이 흘러나왔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풍경도 마치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것 같았다.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사느라 용돈이 부족하기도 했고, 겉멋이 들어 팝송 한 번 들어보겠다고 MAX를 사놓고는 잘 듣지 않아 먼지가 뽀얗게 쌓이기도 했지만 워크맨은 내 일상을 아름답게 꾸며준 고마운 물건이었다.
오랜 시간 나와 함께했던 워크맨은 CD플레이어를 지나 MP3를 거치며 서서히 잊어졌다. 지금은 나의 오래된 잡동사니 상자 속 한 켠에 고이 잠들어 있다. 좋았던 지난날의 추억을 간직한 채.
그 시절 우리가 열광했던 것들 | 오래 전 우리에겐 워크맨이 있었다.
written by mulgogiz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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