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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그 시절 우리가 열광했던 것들

비운의 작곡가 마상원과 은하철도999



작곡가 마상원. 자세히는 몰라도 어디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일 것이다. 작곡가 이전 그는 70년대 ‘마상원과 그 악단’이라는 밴드를 이끌었던 음악가다. MBC의 인기 프로그램인 ‘명랑운동회’나 ‘가요청백전’에서 멋진 음악으로 예능에 활력을 더 했던 밴드가 바로 ‘마상원과 그 악단’이다.

나는 사실 방금 언급한 예능 프로를 한 번도 본 적 없다.(당시엔 내가 너무 어렸다) 그래서 밴드가 연주하는 음악도 들어 본 적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마상원이라는 이름 석 자를 또렷이 기억하는 건 그가 작곡한 수많은 만화 주제가 덕분이다.


악단을 운영하던 그가 어떻게 만화 주제가를 작곡하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만화를 방영해야 했던 방송사는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 주제가가 필요했고, 이 작업을 마상원에게 맡긴 게 아닐까 하고 추측만 해볼 뿐이다.

그가 작곡한 주제가들은 8,90년대 전반적으로 방영됐던 만화들이다. 그랜다이저, 메칸더V, 천년 여왕, 알프스 소녀 하이디, 플란다스의 개, 톰소여의 모험, 엄마 찾아 삼만리, 들장미 소녀 캔디, 은하철도999, 나디아, 꼬마자동차 붕붕, 머털 도사 등등. 이외에도 수십 곡은 더 있으니 그의 손을 안 거친 만화를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다.

이중 반드시 언급해야할 만화 주제가가 있다. 은하철도999다. ‘은하철도999’의 주제가는 마상원을 대표한다 해도 부족함이 없을 곡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약간의 오해가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은하철도999는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하는 노래일 것이다. 그러나 이 노래는 마상원이 작곡한 곡이 아닌(그렇다고 아무 관계가 없던 건 아니다) 원작 주제가를 번안한 곡이다. 마상원이 작곡한 곡은 ‘눈물 실은 은하철도’라는 노래로 주제가가 아닌 삽입곡으로 쓰였다.


‘눈물 실은 은하철도’는 원래 주제가로 쓰일 예정이었다. 그러나 방송국은 아이들이 볼 만화의 노래가 너무 어둡다는 이유로 사용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도 않는 이유다. 이 연유라면 애초에 만화를 방영하지 말았어야 한다. 만화를 본 이라면 알겠지만 은하철도999가 어디 아이들이 볼만한 내용이던가. 한 번이라도 만화를 제대로 봤다면 이런 결정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방송국은 원작 주제가를 번안하여 사용하게 되고, 이 노래는 크게 사랑받게 된다. 그리고 마상원은 이로 인해 표절 작곡가라는 오명을 쓰는 계기가 된다.


1992년. 마상원이 작곡한 것으로 알고 있던 ‘마징가Z’와 ‘은하철도999’의 주제가가 원작과 같다는 게 세간에 알려지면서 표절 문제로 확산된다. 이는 사람들 사이에 크게 회자되며 마상원에게 표절 작곡가라 낙인찍게 된다. 오랜 시간 악단장으로 몸 담았던 밴드를 떠난 시기도 이즈음이다.


훗날 마상원은 인터뷰를 통해 표절에 대한 입장을 이렇게 밝혔다. “내가 만든 노래는 아니지만 일본인 작곡가의 이름을 올릴 수 없었던 방송국에서 내 이름을 사용했던 것. 당시에는 그런 일이 많았다.” 번안곡임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그의 이름이 올라가 있던 건 이런 사정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면 ‘눈물 실은 은하철도’라는 훌륭한 곡을 만들어 놓고 굳이 번안곡에 자신의 이름을 올릴 이유 따위는 없었다. 그의 해명에도 표절 작곡가라는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마상원은 이런 오명 속에서도 슈퍼 그랑죠, 축구왕 슛돌이 같은 명곡을 남긴다. 물론 온전한 평가는 받지 못했다. 만약 그가 현시대에 활동했다면 국민 모두가 기억하는 작곡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 우리가 열광했던 것들 | 비운의 작곡가 마상원과 은하철도 999

written by mulgogiz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