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집]
나는 대전 이정수 미용실만 다닌다. 정확히 말하면, 이정수씨에게만 커트 예약한다. 한번은 바빠서 '요술가위'라는 동네 미용실 갔다가 흑마술을 부려놔서 그만 감자머리가 되어 버린 이후 더더욱 이정수씨를 신뢰하게 되었다.
미용사는 세 부류가 있다. 머리를 잔디로 보는 자, 나뭇잎으로 보는 자, 산으로 보는 자 이렇게 있다. 이 중 산으로 관찰하는 자가 가장 우수하다. 이정수씨도 그 중 한 명이다.
미용사만 탓할 일도 아니다. 내 머리도 상당히 곤란하다. 나도 여기저기 다니면서 알았다. 옆머리는 곱슬, 윗머리는 생, 앞머리는 제멋대로, 뒤통수에는 제비꼬리다. 한마디로 지랄병 맞은 머리다. 감식안을 가진 미용사도 알면서 건드리지 못한다. 그럴 땐 함께 한 숨을 쉬며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해주세요"하고 만다.
이정수씨는 머리산의 세, 골, 향을 본다. 산세의 지형을 보고 골의 흐름에 따라 머리가 어느 방향으로 자랄 것인지를 중점으로 두고 커트한다. 처음 갔을 때 "세 가지 특성이 이러하니 어찌 해드릴까요" 물어, "개성부릴 직업은 아니라 깔끔하고 똑 떨어지는 느낌으로 해주세요" 답했다. 그 다음부턴 가면 그냥 알아서 해준다.
말도 안 건다. 커트에만 신경쓴다. 보통 커팅하면 30분 내로 다 끝나는데, 이 양반은 기본이 50분이다. 그래서 예약을 반드시 해야한다.
두상이 민감하여 바리깡 많이 쓰는 미용사를 지양한다. 이 양반은 옆머리 칠 때만 바리깡을 쓴다. 하루는 바리깡으로 옆머리를 쌀짝 밀더니 잠깐 거울을 보고 미간을 찌뿌린다. "코드선 가져와봐" 하더니 바리깡에 끼워 다시 커트를 시작하길래, "뭐가 이상한가요" 물으니 전력에 따라 미세한 길이 차이가 생긴다고 답한다. 음 그렇구나하고 눈 감고 잠을 청한다. 편안한 상태에 접어든다. 미용 이상의 안식이다.
커트를 마치면 이리보고 저리보고 머리결대로 드라이해준다. "근데 원장님은 똑같이 만원 받으세요?"하니 "잘하잖아요" 싹 웃는다. 달리 더 물을 게 없다.
예민한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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