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야근을 달리다가 어젯밤 막차버스를 타고 느즈막히 집에 도착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아빠와 벌초를 다녀왔다. 예초기로 말끔하게 산소를 다듬고 오니 내가 다 죽겠다. 말이 조상님이지 친할머니를 제외한 모든 분들은 뵌 적도 없는데 매년 이 고생을 사서한다. 왜 이짓을 하고 있나 툴툴대면서도 그냥 아빠가 하니 같이한다.
며칠 전에 다음뮤직에서 모차트르 피협을 검색하다가 미켈란젤리의 13&15번 콘서트 실황 앨범을 찾아냈다. 그 동안 클라라 하스킬의 버전으로만 듣고 있었는데, 듣다보니 내가 찾던 앨범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15번을 듣고 알았다. 20년 전, 학교가는 길에 아빠 차에서 매일 듣던 그 기억이 불길처럼 밀려왔기 때문이다.
나는 이 앨범을 지독하게 들었다. 두 곡 모두 너무 경쾌해서 기분이 나쁘다가도 좋아질 지경이었다. 일종의 도피처였던 것 같다. 매일 이 곡에 숨어 고통을 피했다. 지금 다시 들어보니 두 곡의 차이가 있구나. 15번은 살롱 중심의 소규모 오케스트라를 벗어나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본격적으로 가동시킨, 모차르트의 또 하나의 시작이었다.
그 시작의 바탕에는 아버지 레오폴트의 정신적 뒷받침이 있었다.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고 자랐던 베토벤과는 달리, 모차르트는 늘 아버지의 따듯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모차르트의 피협 스물일곱 개 가운데 두 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장조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차르트는 타고난 긍정적 인간이었다.
지하철에서 두 곡을 모두 듣고 나서, 죽을 때 이 곡을 들으면 천국가는 기분으로 죽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돌아가셔도 나는 과연 산소를 지킬 수 있을까도 생각해봤다. 마음 같아서는 싹 다 밀어버리고 싶지만, 아빠가 이리 애지중지하니 그냥 둘 것 같다. 사지가 멀쩡하면 매년 벌초는 올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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