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클수록 클래식 썸네일형 리스트형 마지막 남은 에너지까지 모두, 피아니스트 김대진 마지막 인사 후 피아노 뚜껑을 살며시 덮고 들어가는 모습에 관중들이 터져버렸다.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인 김대진이 보여준 위트다. '질풍노도'의 주제를 안고 베토벤 17,26,14,23을 줄기차게 밀고 가는 혼신의 열정. 제일 힘든 곡들로만 승부. 흔히들 14번 월광은 1악장만 알고 쉬운 줄 알지만 뒤로 갈수록 폭주의 음표로 온천지를 수놓는 강렬한 곡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더구나 마지막 23번 '열정' 연주에서 남겨두었던 에너지를 모조리 탈탈 쏟아붓는 지경에 나도 함께 기진맥진해버렸다. 나는 여기에 있고, 여러분은 내 노력의 결실을 마음껏 느껴봐라하는 당당한 얼굴. 당당하면 나와서 실력으로 보여준다는 그 내공의 깊이. 건반이 박살나는 줄. 존경받기란 결코 쉽.. 더보기 예쁜 곡을 예쁘게 치지 않아야 예쁘다-알렉시스 바이젠베르크 페달을 죽이면서 쇼팽의 야상곡을 죽이게 칠 줄 아는 자는 내가 아는 한에서는 알렉시스 바이젠베르크가 유일하다. 그는 유독 쇼팽을 칠 때만큼은 페달을 아끼는데 이건 상당한 모험이고 실험이다. 예쁜 곡을 예쁘게 치지 않으면서 예쁘게 쳐야하는 이유다. 한글에서 'ㅇ'과 'ㄴ'을 빼고 좋은 발음 내보라고 하는 것과 같다. 뚜렷한 밤이라는 말로 명징한 밤을 그려내는 것이다. 더보기 지독하게 좋은 모차르트, 미켈란젤리 줄야근을 달리다가 어젯밤 막차버스를 타고 느즈막히 집에 도착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아빠와 벌초를 다녀왔다. 예초기로 말끔하게 산소를 다듬고 오니 내가 다 죽겠다. 말이 조상님이지 친할머니를 제외한 모든 분들은 뵌 적도 없는데 매년 이 고생을 사서한다. 왜 이짓을 하고 있나 툴툴대면서도 그냥 아빠가 하니 같이한다. 며칠 전에 다음뮤직에서 모차트르 피협을 검색하다가 미켈란젤리의 13&15번 콘서트 실황 앨범을 찾아냈다. 그 동안 클라라 하스킬의 버전으로만 듣고 있었는데, 듣다보니 내가 찾던 앨범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15번을 듣고 알았다. 20년 전, 학교가는 길에 아빠 차에서 매일 듣던 그 기억이 불길처럼 밀려왔기 때문이다. 나는 이 앨범을 지독하게 들었다. 두 곡 모두 너무 경쾌해서 .. 더보기 임동혁, 쇼팽의 고전을 써 내려가다. 교보문고 핫트랙스 앞에는 조성진 앨범으로 도배가 되어있다. 쇼팽 콩쿨 1위가 보여주는 음반시장의 파괴력이다. 그런데 이 파괴력이라는 것이 음반 그 자체의 기력을 대변하는 것인지, 아니면 소비시장 공략으로서의 값어치를 말하는 것인지는 구분해 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15 조성진의 쇼팽 콩쿨 1위와 '05 임동혁 쇼팽 콩쿨 3위의 연주 수준을 비교해보면 순위가 곧 기량의 절대적인 가늠자가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임동혁은 '05 콩쿨 당시 조율사의 어이없는 실수(조율 후에 도구를 피아노 속에 그대로 두고 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개성을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펼쳐 보이며 온 관객의 갈채 박수를 이끌어 냈다. 3위라는 '의외의 결과'에 그의 스승 아르헤리치는 자리를 박차고 콩쿨장을 떠났으며, '빡친'.. 더보기 묵묵한 열정의 피아니스트, 임동민 일명 '동 브라더스'라 일컬어지는 피아니스트 임동민, 임동혁은 2005년 쇼팽 콩쿨에서 2위 없는 공동 3위를 차지했다. 이후 동생 임동혁은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후광을 입고 쇼팽을 타이틀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동생과 달리 형은 무언가 돋보이는 쇼맨쉽 하나 없이, 딱히 뭐라 꼬집을만한 음반 하나 내걸지 않은 채, 줄곧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그래서 난 단순히 재능의 차이에서 비롯된 형의 의기소침인줄로만 알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임동민의 베토벤 소나타 앨범만 듣고 있다. 구성은 31번, 23번 '열정', 14번 '월광'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월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식인데 그 중에서도 단연 23번이 눈에 띈다. 랑랑의 '열정'이 폭발이라면, 동민의 '열정'은 만반의 준비라 할 수 있겠다. 어.. 더보기 쇼팽의 정석을 짚는 남자, 폴리니 '쇼팽의 정석' 폴리니가 쇼팽 발라드 앨범을 냈을 때 수많은 팬들이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폴리니 특유의 얼음장 같은 냉철한 타건이 상당 부분 흐려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기교의 쇠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젊은 시절 같지 않다는 소리를 했다. 그러나 '폴리니의 쇠퇴'를 순전히 나이탓으로만 볼 것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 더 나이를 잡수신 이후에 녹음한 폴리니의 쇼팽 녹턴 전집을 들어보면 페달을 깊게 눌러 완전히 낭만주의적인 선율로 빠져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리히테르가 젊은 폴리니를 두고 '감정 없는 연주'라고 매몰찬 비판을 서슴치 않았던 그때와 비교해보면 완전히 다른 폴리니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악보 전체에 점차적으로 감정이 퍼져 들어가는 변화의 과정을 감지할 수 있다. 기교가.. 더보기 꿈을 노래하다-나훈아, 조용필, 박효신 사랑이야기를 뺀, 한국 가요사에서의 '꿈' 노래에는 고독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왜 고독하죠?'라는 질문에 나훈아('72/꿈속의 고향)는 고향의 어머니에게 문안드릴 기약이 없어서라며 하늘의 별을 세는 것으로 슬픔을 달랜다. 꿈은 어머니다. 조용필('91/꿈)도 고향을 그리기는 마찬가지다. 남들은 모두 고향으로 내려가지만, 나만 내려갈 수 없는 그 비통함을 이야기한다. 다만, 별을 세지 않고 별에게 묻는다. 나의 꿈을 아느냐라고. 고향의 향기만 맡을 뿐, 구체적으로 고향의 무언가를 갈구하지 않는다. 그에게 꿈은 화려한 도시에서의 성공이다. 박효신('16/꿈)의 꿈은 나를 본다. 누군가를 의식하여 느끼는 소외감이 아니다. 자아와 끊임없이.. 더보기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