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가 아주아주 어렸을 적부터 ‘인사하기’를 무지하게 시켰다. 그래서 어디를 가던 ‘이 분은 누구시란다 안녕하세요 해야지’ 하면 나는 구십도로 “안녕하세요!”를 크게 외쳤다. 그래서 항상 동네에서 인사를 가장 잘 하는 아이로 통했다.
우리 집 골목 앞에는 서울우유 영업소가 있었다. 할아버지 내외분이 운영하셨는데 나를 유독 예뻐해주셨다. 할아버지는 항상 “어이구 우리 손주 왔구나! 꼬추 얼마나 컸나 보자!” 하시면서 품에 안고 둥가둥가 놀이를 해주셨다. 나는 ‘서울우유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이른 아침이면 두부를 파는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았다. 그러면 나는 엄마가 준 돈을 들고 나가 ‘안녕하세요 두부 하나 주세요’ 하면 아저씨가 검은 비닐 봉지에 담아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나는 그 분을 ‘두부 아저씨’라고 불렀다.
한번은 인사를 잘못했다가 엄마에게 된통 혼난 적이 있었다. 요즘말로 환경미화원 아저씨가 왔는데 나는 늘상 그랬듯 주제어+아저씨로 하여 “쓰레기 아저씨 안녕하세요”하고 말해버린 것이다. 엄마는 크게 당황하여 “청소부 아저씨라고 해야지 다시 인사드려” 하며 아저씨에게 죄송하단 말을 거듭드렸다. 나는 청소부라는 말이 잘 이해가 안가 일단 ‘청소 아저씨’로 입에 붙이도록 노력했다.
주제어에 신경쓰다보니 하나 걸리는 아저씨가 있었다. 연탄파는 아저씨였다. 그래서 나는 그 분은 그냥 아저씨로 불렀다. 항상 리어카에 연탄을 수북하게 쌓고 와서 집 장독대 밑 광에 연탄을 실어주고 갔다(그 때는 시멘트 장독대에 연탄보관용 광이 집집마다 있었다). 아저씨 얼굴에는 항상 검댕이 묻어 있었다.
익선동을 떠난 후에도 꽤 오랜 시간 아저씨가 연탄파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게는 낙원 떡집과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지나다닐 때마다 ‘와 아직도 연탄을 쓰는구나’ 하면서 고생하는 아저씨를 안쓰럽게 보았다.
그런데 어느샌가 연탄가게가 없어졌다. 그래도 아저씨는 줄기차게 익선동을 종횡무진하며 다녔다. 익선동 발길이 점점 뜸해지면서, 지금은 뭐하고 사시려나하면서 아저씨는 서서히 기억에서 멀어져 갔다.
며칠 전에 친구와 톡을 하던 중,
“근데 너네가게쯤이 연탄가게였잖아”
“맞어. 그 할아버지가 건물주다”
“뭐 진짜? 아직도 살아계시냐?”
“나이 80인데 쌩쌩하다. 여기 말고도 건물 많어.”
우와, 알짜배기 부자가 되셨구나. 장사가 잘 되니 임대료를 올려달란다. 재미있는 건 내 친구도 워낙 장사에 능하고 익선동에 빠삭해서 마냥 끌려다니는 입장은 아니라는 거다.
어쨌든, 연탄가게 아저씨는 수많은 아저씨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가운데에서도 어깨 확 피고 사는 할아버지로 우뚝 섰다. 개인적으로 반갑다.
연탄가게도 복원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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