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이 지기시작할 무렵부터 어스름이 물러날 때까지 풀벌레 소리는 줄기차기만 하다. 잎새 마디마디에 서로가 엉겨앉아 부르는 합창은 일종의 간절한 주문과도 같다. 밤의 기운을 불러일으키는 자연의 고전적인 마법이다.
밤의 가스파르를 듣고 있자면 나는 여름내음이 난다. 라벨은 여름밤의 선율에 비밀스러운 환타지가 있음을 은근히 내비친다. 이보 포고렐리치의 연주가 가장 마음에 닿는다. 시작부에서부터 32박자의 이 자글자글대는 녀석들의 왁자지껄함을 또렷하게 그려낸다. 겨울에 들어도 이 놈들이 살아돌아올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별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한 인류학자를 불쌍히 여긴 아프리카의 어느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듣을 수 있다는 것은 참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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