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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클수록 클래식

브람스를 바라보는 두 남자, 리히터와 백건우



한 대가의 일대기를 극적으로 비교해 보는 것도 감상의 즐거움 중 하나다. 브람스의 두 앨범이 여기 있다. 하나는 리히테르가 연주한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1,2번이고, 다른 하나는 백건우가 연주한 브람스 간주곡, 카프리치오, 로망스다.

전자는 한 인간의 음악 인생의 서막을 알리는 대표곡이고, 후자는 '음악적 죽음'을 예감한 한 인간이 음악 인생을 정리해 내려간 마지막 회고작이다.

지금은 19살의 브람스가 더 끌린다. 바흐와 베토벤을 철저히 흡수한 한 청년의 소나타를 들은 슈만은 "이 시대의 새로운 이상향을 이끌어 갈 독수리"라고 극찬했다. 탄탄한 구도, 튕겨나갈듯 강렬한 타건이 온몸에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브람스 말년의 간주곡을 들어보면 이 사람이 그 사람 맞나 싶을 장도로 모든 틀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선율을 구사하고 있다. 덥수룩히 기른 수염이 건반을 슬며시 훑어내듯 잔잔히, 고요히 자신의 마지막 악상을 차분하게 풀어내고 있다.

앞으로 계속 글을 쓰게 된다면, 말년에 이르러 나는 20대에 썼던 글을 두고 어떤 생각에 잠기게 될지. 정통을 고수하는 브람스파가 되어있을지, 실험을 중시하는 바그너파가 되어있을지, 갈림길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