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어른’에 유현준 씨가 나왔다. 익선동 골목길이 뜨는 진짜 이유가 “하늘이 있냐 없냐의 차이”란다. 웃음이 난다. 익선동 골목길에서 하늘을 보면 뭔가 대단한 것이라도 보일 것 같이 이야기한다. 여기 한번 10년 정도 살아보면서 골목길 좀 보면 생각이 달라질지 궁금하기도 하다.
지금 익선동이라 부르는 골목길은 대부분 낙원상가옆에 위치한 장소인데(그래서 엄밀히 익선동도 아니다) 당최 하늘을 볼 여유가 없다. 골목이란 골목은 죄다 재편성해서 뚫어버렸다. 아마 지금쯤 가면 에버랜드 놀이기구 기다리는 기차놀이하며 걸어가고 있을거다.
내가 본 익선동 골목길은 개똥 피해다니느라 하늘은 커녕 바닥만 눈으로 훑어가는 길이었다. 국민학교 철조망 틈 사이로 뛰어내려 집으로 빨리가는 지름길, 피아노 학원 가기 싫어 쭈뼛쭈뼛 걸어가던 길, 애들이랑 밤늦게까지 축구하다가 엄마한테 된통 혼난 길, 가스집 불 나서 온 동네사람 도망나오던 길, 요정아가씨들 한껏차려입고 오고가던 그 길에서 무슨 하늘이 보이니 아니보이니 그러고 앉아있나.
“걷다 보면 새로운 풍경의 연속”이라는데 뭐가 새로울까. 본인이 말한대로 죄다 식당이고 카페인데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가게들이 들어서고 없어지는 그거 말하는건가. 그러면서 앞으로 배달문화로 식당도 없어질 걸 걱정하고 있는 생각은 대체 어디에서 시작된 걸까. 불경기에 쓸데없는 돈 안 쓰고 할인쿠폰 받아 집에서 아늑하게 식사하겠다는 배달 민족의 생각이 과연 나쁜 걸까.
온갖 아름다움으로 골목길을 버무리는 전문학 컨설팅 개발업자 덕분에 골목길 주변 땅값만 하늘 모르고 치솟는다. 거기가서 본인이 직접 가게 차려 놓고 하늘을 봐라. 하늘이 보이는지 손님이 보이는지 한숨이 나오는지. 본인이 그토록 좋아하는 베네치아 갈림길의 낭만, 자연의 빛이 과연 느껴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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