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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같지 않은 소설/젠틀하지 못한 익선동

북촌한옥마을이라는 환상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경복고등학교에서 청와대를 건너오던 하교 길, 그곳에서 바라보는 오늘날 우리가 이름 붙여준 '북촌'의 풍경은 그야말로 난민촌이었다.

다 쓰러져가는 게딱지만한 기와집들이 숨쉴틈도 없이 따닥따닥 붙어있는 꼴이란 그곳에 살고 있는 나조차도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아무리 고도제한구역이라지만 그래도 '국가의 얼굴' 주변이 이 꼬락서니여서 야 내가 다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비참했던 그 지경이었다는 말이다. 무슨 아름다움이니 뭘 지켜야 한다느니 그런 개념 자체가 없었던, 그냥 시골 동네 못지않은 칙칙한 곳이었다.

북촌의 탄생은 인사동의 포화상태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애초부터 자본의 확장이 마을의 '격'을 만들어준 것이다. 소위 '돈되는' 고미술품 상인들이 저가의 자본논리를 피해 새로운 개척지를 찾아왔는데 그게 길 건너 윗동네였다. 거기에 서울시의 야심 찬 관광계획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척척 걸어온 과정이 지금의 '북촌'을 형성케 했다. 이미 '만들어진 전통'임을 수많은 학자들이 토로했건만 학계 간 불통은 여전한가 보다.

한 때 총리공관 앞에 김밥천국과 던킨도너츠가 들어왔었다. 밤에 출출하면 나가서 라면 하나 먹고 값싼 커피 한잔 마시고 들어오면 참 괜찮았는데 어느샌가 무언가로 또 바뀌어 아쉬었던 기억이 난다.

이곳은 문화재지정보호구역도 아니고, 건축적 아름다움의 의무를 지고 있는 곳도 아니다. 가상의 노스탤지어에 지금의 모습을 억지로 끼워 넣으려니 답이 안 나오는 것이다. 삼청동에 15년을 살았던 나로서 가장 기억에 남은 곳은 화동의 기름보일러 가게였다. 마을 사람들의 난방을 책임져 주었던 곳. 그러나 그곳이 없어졌다고 해서, 또 그곳에 전혀 다른 무언가가 들어서서 장사를 한다고 해도 하등 문제 될 것은 없다.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동네는 변한다.

누군가 공덕동 인근의 한옥을 예로 들어 내게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같은 한옥 밀집지역인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가에 대해 보자면 '관광객'의 요소도 큰 몫을 차지하는 것 같다."

우리는 관광 이전의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우리가 통칭하여 부르고 있는 '한옥'이라는 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실제로 그것이 존재하는지를. 우리가 그것을 '한옥' 또는 '한옥마을'이라 불러주는 순간 그것은 무언가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변신하는 건은 아닌지를. '주술'을 불어 넣는 사람의 책임이 만만치 않다.

변해야 할 것과 변하지 말하야 할 것에 대한 원론적 질문을 100년 동안 던져봐도 절대 답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자기가 만든 새장 속에서의 환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