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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클수록 클래식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집/발터 기제킹



“나비는 왜 계속 수집하는 거에요?” 부인이 묻자 발터 기제킹은 짧게 대답했다. “손가락이 아주 예민해지니까.”

그는 손가락 뿐만 아니라 발가락도 예민했다. 피아노의 페더링을 반의 반 정도 살살살 밟아가며 현과 마주치는 묘한 지점에서 악보를 훑어내는 천부적인 재주가 있었다. 그가 ‘페더링의 화가’라는 별칭을 갖은 이유이다.

악보 그 자체를 드러내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 어떠한 해석의 여지도, 일말의 MSG도 없는 깔끔한 연주. 그 바탕에 곤충학자였던 아버지가 있다.

어렸을 적부터 그는 아버지를 따라 자연에 나가 함께 곤충을 채집했는데, 특히 나비에 관심이 많았다. 수집을 넘어 본인이 나비의 종을 두 개나 발굴했을 정도다. 이 정도면 가업을 이어받았다고 얘기할 수 있겠다. 살금살금 까치발로 다가가 살포시 손가락으로 나비를 쥐는 그 평생의 즐거움이 피아노와 엮인 격이다.

20세기 초중반기 연주가라 좋은 음질의 음반이 거의 없지만, 근래에 발매된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 리마스터링 앨범만큼은 소장 가치가 있다. ‘악보만 있음’ 아예 간판을 걸어놨다. 모차르트 특유의 생동감이 그대로 전해진다. 다만, 경쾌함이 없다. 북어국을 끓이는데 구수한 육수는 빼고, 데쳐진 물에 파도 넣지 않고 북어에 두부만 퐁당 집어넣어 먹는 꼴이다. 호불호가 갈릴 수 밖에 없다.

‘한 방이 없다’는 비판은 수용하기 어렵다. 모차르트 피아노곡에 한방이라니. 그냥 편하게 들으라고 만든 곡을 그대로 풀어낸 것 이상 이하도 아니다. 상상하지 않고 ‘지금 우리 여기’를 느껴볼 수 있는 젠틀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