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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클수록 클래식

[태교 음악 - 말러 피아노 사중주]



간밤에 쌓아둔 책 더미를 밀어내고 아내가 커피 한잔 내준다. 오늘의 커피는 에디오피아 모모라 내추럴. "감사합니다" 하고 옆으로 몸을 뉘어 조르륵 커피를 따라 한 모금 퍼뜨린다. '커피 배트맨'이 제공하는 원두는 시중의 것과 비할 바가 아니다. 그윽한 향미가 금새 온 방을 감싼다. 아내는 아침부터 양갱을 만든다며 급하게 부엌으로 갔다.

말러 피아노 사중주를 틀어놨구나. 어제 본 셔터 아일랜드에서 반복적으로 흘러나온 곡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어둘 것은 영화는 영화고, 음악은 음악이라는 점이다. 영화가 음울하다 하여 음악까지 도매급으로 팔아버려서는 안된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가 어우러져 반복적인 패턴을 유지하며 나아간다. 말러는 생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 실내악을 작곡했다. 이 곡은 1876년에 작곡된 곡으로 그가 빈 음악원에 입학한 첫 해인 열다섯 살에 작곡을 시작하여 이듬 해 완성한 곡이다.



4악장이 아닌 1악장만으로 구성된 곡이다. 세간에서는 작곡을 중단했다고 하는데 내 생각으로는 중단이 아닌 완성이다. 애초에 한 악장으로만 만드려고 한 것이다. 이후 말러의 파격적인 행보들을 보았을 때 한 악장으로 모든 것을 마무리하는 작업은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어느 포털 사이트에서는 이 곡을 “비극적 운명에 대한 예감”이라는 표현을 써 가며 말러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곡에 담았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유태인에서 찾는다. 그러나 유태인 학살이 자행된 것은 60년이 훨씬 지난 이후에서였다. 말러가 ‘백 투더 퓨쳐’ 주인공이 아닌 이상 이런 해석은 그냥 끼워 맞추기라고 보면 된다. 전혀 신경쓸 것이 못된다.

그냥 곡만 들어봐라. 말러가 직접 피아노를 치며 초연에 임했던 그 열정, 땀, 호흡, 연주자 간의 눈 마주침, 천길 계곡을 그리며 깊고 길게 치고 내려오는 첼리스트의 손떨림을 느껴보라. 치명적인 매혹으로밖에는 읽혀지지 않는다. 불행의 암시가 아니다. 어떻게든 나의 세상을 밖으로 표출해 내겠다는 젊은이의 단호함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한 대가의 시작을 알리는 대작이다. 희망이고 생존이다. 본인도, 아기도 아무런 감흥도 없는, 그저 들으라니 듣는 ‘예쁜 곡’들은 에너지 소모일 뿐이다. 앞으로 벌어질 무수한 인생의 굴곡을 이겨내기 위한 준비의 곡. 말러 피아노 사중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