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틀어 보건대, '쇼팽의 바이블'에 있어 마우리치오 폴리니를 능가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초기 프렐류드 전곡, 에뛰드 전곡, 피협 1번을 들어보면 알파고도 이 정도 수준의 명료하고 정확한 기교는 따라올 수 없을 경지임을 누구나 실감할 수 있다.
지금은 호호 할아버지가 되어 그 옛날의 짱짱함을 내려놓은지 오래되었지만, 적어도 마흔 이전의 폴리니는 쇼팽 연주에 꽤나 심혈을 기울였다. 그 중 전주곡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오직 작곡가가 남긴 음표만을 보고 내린 해석'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곡 그 자체의 발현임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여보게 쇼팽은 나요!' 하는 또 한 사람을 확인했다. 모차르트의 대가 게자 안다. 교보문고에 갔다가 게자 안다 모음집을 찬찬히 읽어보던 중 모차르트만 쏙 빼고 낸 DG사 기획앨범이 있는게 아닌가. 지극히 의도적인지라 그 자리에 사 버렸다.
쇼팽 전주곡 스물네곡 전곡이 실린 4번 씨디에서 멈췄다. 계속 반복해서 들었다. '왼손은 거들뿐'이라는 쇼팽의 대원칙이 적용되었다. 왼손은 악곡의 템포를 정확히 맞추고, 대신 오른손을 통해 루바토(연주자 재량)로 곡의 수위를 맞추어 나아가며 자기 곡을 만들어 간다. 기계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기교에 쇼팽의 감성을 얹은 그야말로 넘버3안에 드는 작품이라 평하고 싶다. 한 세대가 늦은 폴리니는 과연 앞선 게자 안다의 연주를 들어봤을지 묻고 싶다.
음표가 먼저, 생각은 다음에. 게자 안다는 음표 공부와 병행해서 세상 공부도 많이 했다. 목수에게 집 짓는 방법을, 농부에게는 밭가는 요령을, 제본술을 익히고 공예품을 만드는 등 사회의 다양한 친구들과 세상을 공유했다.
스물네곡에 대해 게자 안자가 내린 해석은, 쇼팽의 특정한 시기의 감정이나 상태의 분석보다는 이를 종합한 평균적인 그의 태생적 기질을 잘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바이블' 리스트에 포함될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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